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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재혼을 한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유별나게 아빠사랑 많이 받고 자란 나에게

조심스럽게 많이들 물었었다.

 

"넌, 괜찮아..?"

 

촌스럽긴.

 

안괜찮을 건 또 뭐야.

게다가 엄마는 아빠만큼이나 사랑이 많고 다정한 분을 만나

(그래도 아빠의 센스는 못따라오시지만)

너무 행복하게 지내니까 난 좋다.

 

만약에 내가 좀 더 어렸거나 철이 없었음 어땠을지 모르겠는데

엄마가 외롭지 않게 너무나 따뜻하게 해주시고

한번도 아버지라 못불러드렸는데도 우리딸 우리딸 하시는 새아버지.

난 좋아한다.

 

음.

그치만 아직도 못하겠는거는 아버지가 들어가는 호칭.

난 새아버지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그냥 아저씨.

불러드리기 싫은건 아닌데 그냥 아빠가 서운해할 수도 있으니까.

 

엄마의 배우자로서 아저씨는 어쩌면 아빠보다 더 좋은 분이실지도 모르겠다.

근데 나한테 아빠는 한명뿐이라서,

엄마가 재혼한분은 엄마의 남편이지

나의 아빠가 아니라서.

 

난 그래서 서운하지도 않고

엄마가 아저씨랑 싸운 얘기를 전하면

친구 연애얘기 듣는것처럼 재미있다.

 

아빠도 엄마가 혼자 외롭게 슬퍼하며 지내는 것보다

지금 엄마가 웃는 모습을 더 좋아할거야.

 

나 있지.

내가 별로 좋은 딸은 아니었던거 같은데

그래도 아빠없는 딸래미로 12년째 살면서

내가 느끼는건.

나만큼 아빠사랑 많이 받은 사람을 찾기가 정말 어렵구나, 라는 것.

대학다닐 때는 매일 아침 아빠의 모닝콜로 하루를 시작하고

아빠랑 나눠입은 커플티,

사람들은 징그럽다지만 다 큰 성인이 되어도 아빠랑 뽀뽀하고.

평소엔 남자친구보다 더 전화통화 많이 하고.

 

아빠 나 머리 염색할건데

아빠 나 오늘 술약속있는데

아빠 나 오늘 누구 만나는데

아빠 나 오늘.....

미주알 고주알 하루의 일과를 전하던 나랑,

 

야, 나 지금 화투치고 있는데

야, 이번주말에 광어회 먹으러 내려와

야, 아빠가 좋은 음악 찾았는데

야, 아빠 케이에프씨 비스킷 먹고 싶은데

야, 나이키가서 아빠 티셔츠 좀 골라와

야, 너 그런놈 좋아하면 안돼 아빠 자존심상해,

말투부터 맨날 남자친구 같았던 우리아빠.

 

난 그래서 인생이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지금 내 옆에서 숨쉬고 말하지 않아도 그게 크게 억울하진 않은건

발렌타인데이에 학교로 초콜렛을 배달해주는 낭만적인 아빠를 갖는다는게

너무 특별한거라서. (특히 그땐 20세기였음)

특히 내가 아빠가 진짜 멋있다고 생각하는 점은,

울아빤 나에게 공주니 뭐니 그런 오글거리는 얘기는 하지 않는

몹시 시크한 아빠였다는 거.

내가 문자메세지 보내는거 첨 가르쳐주고 나서

자 아빠 이제 나한테 문자 하나 보내봐, 했더니

옆에 앉아있는 내 얼굴을 빤히 보내더니 보낸 첫문자

"넌 뭐하는 인간이냐?"

이런 센스쟁이를 보았냐고요.

이 에피소드 다 풀어낼라믄 포스팅 하나로 안끝나니까 여기까지만. ㅋ

 

아무튼 별로 좋은 딸은 아니었고

아빠랑 한 약속도 많이 어겼고 그래서

아빠 딸이던 시절의 나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는데...

 

 

근데 지금쯤이면 아빠가 날 보고 그런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저것이 아빠를 정말 많이 사랑하는구나, 하는걸 알아줬음.

 

2001년 3월 20일 이후에

정말 하루에 단 한번이라도 아빠 생각 안한적 없는데.

아빠가 그걸 기뻐해줬으면 좋겠다.

 

이제 아무도 기념하지 않는 결혼기념일이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의 결혼을 생각하면서

딸래미가 혼자 술도 한잔 하는구나,

우리딸 의리있네,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겠다.

책상앞에 높여있는 아빠랑 마지막날 그 사진.

그러고 보니까 액자도 아빠가 가져다준건데.

아무튼 이 사진도. 한국에서든 호주에서든 항상 같은 위치에 있고

매일매일 아빠 생각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는거.

그거만 알아주면 좋겠다.

 

 

 

서른다섯번째 아빠엄마 결혼기념일 축하해요.

아무도 기념하지 않지만 나는 기념해요.

다른 사람이 기념하지 않는거 나는 안서운해.

내가 하면 되니까.

 

아빠야 사랑해.

아빠 나오는 뉴스데스크 오랜만에 한번 봐야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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