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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짐이든 뭐든 짐을 잘 못싸는 나.

자취생활 하면서 그렇게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참 짐싸기 실력은....

 

그전부터 그런 생각을 종종 하기는 했었는데

바누아투 여행갔을 때 확실히 알았다.

가져간 옷 중에 2/3 은 꺼내보지도 않았고

18킬로그램에 육박했던. 돔케에 다 때려넣어 가져갔던 사진장비는

24미리 하나만 썼나.

그때 챙겨간 양으로 따지면 아마 어디 유럽여행 두달가는 사람처럼 보였을텐데.

아마 겁이 많고 불안함을 잘 느끼는 성격때문에

뭔가 늘 더 가져가야 하고 더 챙겨야 한다는 압박감.

 

나갈 때마다 짐때메 고생하는 나를 너무 잘 아는 엄마의 불호령.

필요한거 다 부쳐줄테니 절대 무겁게 들고 가지 말라는 엄포.

운동화 다 세탁해서 신발안에 종이 다 구겨 넣어서 모양잡고 켤레 켤레 다 포장도 했는데

엄마가 노발대발해서 몇켤레 못들고 온건 아쉬웠지만

여기서도 신발은 살 수 있으니까.

(정말. 집안 어딘가에 아직 개시하지 않은 새신발이 늘 한켤레는 있어야 될 것만 같다.)

우주에서 제일 예쁜 내 기타도

그냥 싼거 하나 사서 쓰지 뭘 들고 가냐는 엄마의 폭풍 잔소리 때문에 못들고 왔고.

역시. 그러나 여기서 하나 샀고. (싸지는 않지만)

 

카메라 가방은 정말 포기하면 안되는거였는데.

사실 나도 짐때메 고생한 악몽들이 너무 많아

(쿠알라 룸푸르 공항에서 초대형 캐리어 바퀴 고장나서

비맞고 혼자 쭈그려 앉아 울었던거 생각하면 지금도 안습....)

이번만은 엄마 얘기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나중에 오빠 올 때 부탁하려고 두고 왔었다.

 

그게 문제의 시작이었던건지도 모르겠다.

 

한참 우울감에 빠져 누가 내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나기 시작했던 10월 말부터

정말 사진이 너무 찍고 싶었는데.

사실 사진 안찍어도 하루 날잡아서 필름 정리하고

카메라 꺼내서 닦고 쓰담쓰담해주고 예뻐해주면

진짜 기분전환 되는데.

 

돼지랑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돼지가

'니가 카메라를 안가져갔다는게 너무 이해가 안돼. 너 그거 없음 안되는데' 했을 때

아. 그게 어쩜 내 힐링이 되어줄 수도 있는거였는데. 싶었다.

옛날부터 기분 안좋을 때 잘 했던 짓거리.

돼지는 내가 같이 있는데도 이어폰 꽂고 사진찍느라고 혼자 어슬렁 거려도

이유를 묻지 않아주었는데.

그래서 정말 나를 잘 아는 내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

 

뭐야. 무슨 말이 이렇게 많니 나 오늘. ㅋ.

 

 

 

애니웨이.

드디어 만난 내 새 장난감.

2월에 호주행이 확정. 티케팅까지 마친 오빠에게는

내 카메라. 부탁할 생각.

장비정리하는 홍범오빠에게 토스받은 펜삼은

아직 개시전이고...

 

생각많아지고 머리 복잡할 때

집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악기점에 가서

가끔 피아노를 치고 왔었다.

좀 블랙컨슈머 스럽긴 하지만

자주 가니 점원들도 잘 알아서

나 가면 '오늘은 이걸로 쳐봐 새로온거야' 하면서 추천도 해주고

거기 혼자 앉아서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피아노 치다 오면

기분 정말 좋았는데.

근데 그 악기점이 문을 닫아서...

사야지 사야지 하다가 못사고 있었는데...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의 정신나간 짓의 정점을 찍고.

뭔가 의지하고 집중할 것이 필요해진 시점임을 깨닫고.

생각그만하고 사자. 하며 들여놓은 장난감.

 

사고팠던 모델은 신제품/중고품 둘다 말도 안되게 비쌌고.

가볍고. 일단 브랜드도 야마하고.(그래봤자 대륙생산)

심지어 집 가까이에서 몹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분을 만나서.

 

룰루랄라. 하며 갈 계획이었는데.

 

모든 일에 에피소드를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니까.

 

옆집사는 차있는 학교 동생에게 부탁해서 같이 가다가.

정말 차타고 우리집에서 10분도 안걸리는 거리였는데.

주유소에서 동생이 기름넣고 후진하다가.... 접촉사고가 났다.

어쨌든 잘 해결은 될 것 같아 보이는 상황이긴하지만

또 나는 미안해지게 된거다.

 

근데 j가 그때 해준 말이 기억이 났다.

미안하다는 말 너무 많이 하는 것도 별로라고.

그래서 오늘은 세번만 했다.

 

(하루에 세번씩만. 맥시멈 정했음)

 

 

암튼. 딸램이 쓰던걸 안써서 판다는데

상태도 좋은데다 너무 친절하시고....해서

원래 가서 30불 깎을 생각이었는데

말이 안나와서...제값주고 가져온....

말이나 한번 해볼걸 그랬나... 흥정 자신없음...

 

그러니까 지금 심각한 문제는.

내가 지금 저 장난감 가지고 노느라

에세이를 아직도 안쓰고 있다는거.

에세이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판만 두드리려고 하면

생각이 많아지고 정말 머리가 아파지는 이상한 상황....

그래서 계속 피아노만 두들기고 있는 중인데....

 

딱 30분만 더 갖고 놀다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진짜 오늘은 제발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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