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시에 학교가서 밤 열한시까지 공부하고 왔다.
정말 하루종일 공부만 했다.
그런데도 이번주 과제를 다 못했다.
정신놓고 살았던 지난 몇달간을 떠올린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지내던 때가 있었으니 이 바쁨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쓸모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언젠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보았기에 알게 된 내 자신의 가치였다.
사랑받고 사랑하던 그 시절은 가고 없지만
혼자인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 것은
그 시절의 기억이 내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주 잠시라도, 아주 약간이라도 연관있는
쇼비지니스계에 있던 친구들이
모두 한 입으로 비판적이었던 어느 뮤지션이 있는데
그런데
그 대화의 화두가 그 사람의 부족한 (내지는 못마땅한) 인간됨에서 시작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얼마나 천재적인 뮤지션인지로 귀결될 때마다
나는.
천재로 태어나지 못한게 아쉽다.
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물었다.
한국에 가고 싶지 않냐고.
가고 싶기도 하고
가고 싶지 않기도 하다고 대답했다.
이곳에서의 삶이 행복하지 않으니 가고 싶지만
그곳에서의 내 삶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으니
가고싶지 않기도 하다.
오늘 밤 비가 이토록 쏟아지는 것과
내일이 일요일이어서 성당에 간다는 것
그 두가지가 그나마
오늘밤 나의 위안.
차를 가지고 나가서 술을 마실 수가 없었다.
술 안먹는 술자리는 지루하다.
취한 친구들을 라이드해주었다.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차로 돌아온 E가
창문을 내리라더니 허리를 숙여 내게 말했다.
그때 니가 나한테 한 말 있잖아.
생각해봤는데.
걱정하지마.
난 그냥 그대로 있을거야.
난 변하지 않을 것 같아.
그냥 알고 있으라고.
웃으며 얼른 꺼지라고 하고 차를 돌려 나오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술도 한모금 안마셨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모든게 미안했고
모든게 고마웠다.
불안하고 우울한 요즘 곁에서 날 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나를 걱정하고 있는지 알았다.
위로나 좋은 소리를 할 줄 모르는 E가
술김을 빌어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게
본인 딴에는 얼마나 신경쓴 위로인지 나는 안다.
잘 살고 싶다.
남들처럼 웃고
남들처럼 떠들면서
그냥 평범하게.